제목 | 페르게 (PERGE) - 성서상의 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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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여행사 |
작성일 | 17-03-07 19:52 |
이 도시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사람들로 칼카스(Calchas)와 모푸스(Mopus)등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트로이 전쟁 당시 연합군의 함대는 보이오티아에 있는 아롤리스 항구에 모였는데, 어떤 날은 바람이 없고, 어떤 날은 역풍이 불어 계속 출항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아가멤논(Agamennon)이 여신 아르테미스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에 아르테미스가 방해하는 것이었다. 칼카스는 아가멤논에게 그녀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딸 피게비이아(Phigevia)를 제물로 바치도록 조언했던 예언자이다.
이들이 이도시의 창건자라는 것을 AD 2세기에 세워졌던 조각상 밑 부분에 새겨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페르게의 역사는 알렉산더대왕이 진군해 온 BC 333년부터 시작된다. 이 도시는 성벽을 쌓지 않았으므로 알렉산더에 쉽게 정복되었고 파셀리스로부터 팜필리야에 이르는 여정을 안내하며 환영하기까지 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가 지배했던 땅들이 수하 장군에 의해 분할되었는데 그 중 셀레우쿠스 장군에 의해 이 땅이 다스려지게 되고 이 때 처음으로 요새를 구축하고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세워진 파수 탑들이 오늘날에도 거의 원래의 높이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후 BC 188년 셀레우쿠스 왕조는 페르가뭄 왕국의 유메네스 2세에게 넘어갔다. AD43년에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페르게는 융성했고 그 당시 건설된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또한 페르게는 유명한 수학학자 아폴로니우스(Appollonius 250-220 BC)와 철학자 비루스(AD 2)의 출생지이다.
성서 상에는 버가로 표기되어 있으며 사도 바울 시대는 페르게와 지중해를 배로 오갈 수 있었다. 이곳은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AD 45-49)바나바와 방문했던 곳이며 바울의 일행이 바보(Papos)에서 배를 타고 페르게로 왔을 때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페르게에서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동하여 유대인 회당에서 설교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와 AD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 때 페르게의 대 주교가 그 회의들에 참석했다.
v극장 이 극장은 그리스-로마 스타일로 갤러리와 14,000명의 관중석으로 되어 있으며 무대 건물은 52m의 길이이며 하나의 층으로 되어있고 내부 벽은 대리석으로 덮여져있다. 그것들 중에 몇몇을 아직 볼 수 있는데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생애가 그려져 있다.
v스타디움 길이가 243m, 폭이 34m 되는 이 스타디움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경기장 바깥쪽을 면하고 있는 상점들은 원통형 천장으로 받쳐져 있으며 30개 방들 중 20개는 상점으로 사용되었는데 벽에 새겨진 글자는 그들의 거래 품목과 상점의 주인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대 경기장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v로마의 문과 헬레니스틱 문 이 도시는 서쪽, 동쪽, 남쪽으로 각기 문을 가지고 있는데 남쪽의 문은 헬레니스틱문이라 불리는 2개의 원형으로 된 탑이 있으며 원래의 형태 그대로 원추형의 지붕을 가지고 아직도 서있다. 탑 안쪽으로 U자형 공간이 있는데 발굴 작업 시 아폴로, 아프로디테, 칼카스, 모프스 등의 조상이 발견되었다.
v아고라 아고라는 AD 2세기 겨의 것으로 헬레니스틱 문의 동족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76X75m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바닥에는 기하학적인 모티브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둘레에는 상점들이 있으며 기둥에 창녀의집을 가리키는 간판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v아르카디안 이 아르카디안의 거리는 당시에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혔다. 아크로폴리스 밑에 샘을 파서 그 위에 강의 신 케스트로스 와상을 만들고 물이 흘러나오게 하여 아르카디안의 거리 가운데로 물이 흐르도록 2m 넓이의 도랑을 만들었다.
거리의 중앙에 물을 흘려 경계선을 만들고 양쪽으로 가로수처럼 석주를 세워 한껏 거리의 아름다움을 돋아 주었다.?이 석주 중에 아폴로가 4두 2륜 전차에 왕관을 쓴 모습, 아르테미스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는 활과 화살을 쥐고 있는 모습, 이 도시의 창설자인 칼카스가 헬멧을 쓴 모습, 그러나 운명의 여신 티케가 조각되어 있던 기둥은 누군가가 패어 가버려 흉측하게 남아있다.
v목욕탕 도시의 서쪽에 세워져 있는 이 목욕탕은 AD 3세기의 것으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온탕과 냉탕, 사우나, 그리고 체육관 등 5개의 방으로 되어있으며 바닥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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