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현지명 - 타르수스(TARSUS), v성서명 - 다소 v관련성경 - 행 9:30, 21:39, 22:3 현지명이 Tarsus인 다소는 청동기시대인 B.C 3000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 땅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면서 B.C 333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수중에 떨어졌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다소는 시리아의 왕 Seleusus의 지배에 하에 들어갔고(321-281 BC), 2세기에는 이 도시가 학문의 중심도시로서 융성했으며 실제로 로마시대에 다소는 문화의 도시로서 많은 석학들을 배출한 이름 있는 도시였다.
B.C 41년에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로맨스를 만든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들 두 사람이 숙명적으로 만난 지 46년 후에 사울, 즉 미래의 사도 바울이 다소에서 유대인 혈통이면서 로마시민으로 태어났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의 로마군 사령관에게 한 진술에서, 그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유대인이며 Cilicia의 다소사람이다. 나는 시시한 도시 출신이 아니다."
후에 다소는 중요한 기독교 센타가 되었고, 세 번의 큰 종교회의가 431년, 435년, 그리고 1177년에 각각 개최되었다. 비잔틴 시대까지도 융성한 도시였으나, 아랍 족의 약탈과 통치자들이 수없이 바뀌면서 점점 쇠퇴해져 갔고 1515년에는 오스만트루크 제국의 수중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렀다. 유적으로는 사도바울의 우물, 클레오파트라의 문, 다소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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