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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지역

제목 하타이주(州)의 안타키야 (ANTAKYA) - 성서상의 수리아 안디옥
작성자 윤여행사
작성일 17-03-0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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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명 - 안타키야(ANTAKYA)   v성서명 - 수리아 안디옥 v관련성경 - 행 13:1, 15:30, 35

 

현지명 안타키야(Antakya)는 Seleucus 1세에 (BC 321-281)에 의해 세워졌으며 그의 父王의 이름을 따서 안티옥(Antioch-성서의 안디옥)이라 불려졌다. 안디옥의 최초 주민은 원주민과 그리스,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정착 민들이었다.

 

이 신도시 안디옥은 셀레우쿠스가 죽을 무렵에는 마케도니아로부터 인도의 국경까지 이르는 방대한 왕국의 수도였다. 역사학자 Strabo에 의하면 도시가 부유하여 많은 나라들로부터 예술가가 모여들었고, 실크로드에 속해 있는 관계로 헬레니즘 문명세계로 이 물건들을 전파하고 인기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부유함과 사치로 둘러싸인 안디옥 주민들은 곧 향락에 쉽게 빠지고 사치에 몰두한 생활을 하게 되어 방종하고 타락한 도시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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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후에는 기독교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파되었으며,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기독교인을 크리스챤(Christians)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도 베드로는 이곳에 얼마동안 살면서 안디옥 교회의 초대감독으로 일했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을 선교센타로서 삼았다. 이곳은 사도바울의 1.2.3차 전도여행의 출발지점이었으며 후원 처로서 기독교가 전파되는데 크게 공헌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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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Dioletian왕 때에 안디옥의 기독교인들은 큰 수난을 겪었고 많은 교회들이 파괴되었다. 그 후에 안디옥은 그리스정교의 전파를 위한 센터였을 뿐 아니라 이단으로 알려진 아리우스(Arius)와 유세비우스(Eusebius)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이단교리를 전파한 곳이기도 했다.

 

이 교리는 AD 385년에 열렸던 니케아(Nicaea)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그러나 아리우스 설은 4세기말까지 교회에 문제를 일으켰다.

 

안디옥은 또한 사도요한의 직계제자였던 폴리캅(Polycarp)에게 기독교리를 해설한 편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한 익나티우스(Ignatius)의 도시였다.

 

6세기 이 도시는 2번의 큰 재난을 당했다. 그 하나는 약 200,000명 정도의 사망자를 낸 대 지진이었고, 다른 또 하나는 페르시아군의 침략으로 도시가 깡그리 불타버렸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사도 베드로의 암굴교회와 로마시대의 수로, 성벽, 비잔틴시대의 모자이크를 모아놓은 고고학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