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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 연안 지역

제목 베르가마 (BERGAMA) - 성서상의 버가모
작성자 윤여행사
작성일 17-03-07 17:25

페르가뭄(Pergamum 현지명 베르가마)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방비하기 너무도 수월한 천연의 요새에 위치해 있어서 매우 이른 시기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페르가뭄이라는 이름이 전래된 유래는 트로이 전쟁 시기로 올라간다. 전설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가 불타고 파괴된 후 트로이의 왕이었던 헥토르(Hector)의 미망인 안드로마크(Andromache)는 아카이아인 들에 의해 노예로 잡혀간 후 아킬레스의 아들 네프톨레무스와 결혼한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세 아이 중 하나가 페르가뭄을 건설한 페르가무스(Pergamos)이다. 그 의미는 "높은 곳" 을 의미한다.

 

BC 560년경 리디아, BC 360년경에는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아오다가 BC 334년 알렉산더대왕 때에 이르러 그리스의 헬레니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그가 점령한 방대한 영토는 그의 충실한 4 장군에 의해 분할 되었다. 그 중에 리시마쿠스 장군의 통치 하에 들게 되었는데 페르가뭄이 천연적인 요새임을 깨달은 그는 아크로폴리스의 꼭대기에 성을 쌓도록 했다.

 

리시마쿠스 장군은 이곳을 군사기지로 만든 후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령관 필레타리우스(Philetarius)를 이곳의 성주로 만든 후 알렉산더 대왕으로부터 자신의 몫으로 물려 받은 9,000 탤런트의 금화를 필레타리우스에게 맡겼다. 그러나 펠레타리우스는 시리아의 왕 셀레우코스와 내통하여 그가 리시마쿠스를 공격한다면 리시마쿠스가 자신에게 맡겼던 보물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드린 셀레우코스와 리시마쿠스 사이에 전쟁은 불가피해 졌고 기원전 281년 리시마쿠스는 패하여 전사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보물을 받기 위해 찾아온 셀레우코스의 사신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대신 이 보물을 사용하여 페르가뭄을 요새화하고 그는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며 페르가뭄 왕국의 새장을 열었다.

 

BC 133년에 들어와 앗탈로스3세는 정치보다는 동,식물학, 독극물학 등 연구에 열중하여 학문에 미쳐서 그의 방대한 국가인 페르가뭄을 로마에게 자진 헌납 하므로 서 페르가뭄 왕국은 종식된다.

 

비잔틴 제국에 들어와서는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 함으로서 페르가뭄도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된다. 즉 사도 요한의 요한계시록 속에 소아시아 7대 교회중의 하나가 페르가뭄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에 페르가뭄도 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3세기경 데시우스 황제는 3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지진으로 황폐하게 되고 게다가 7-8세기에는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쇠퇴하게 되어 조그마한 촌락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페르가뭄의 찬란한 유적들은 수 백년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땅속에 잠들고 있었다. 1878년 어느날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잇는 철도공사를 감독하던 독일의 토목기사 칼 휴만이 한 농부가 자신의 마차 뒤에 대리석에 부조 된 한 유물의 파편을 싣고 가는 것을 보고 이것을 얻어 베르린의 고고학자에 보내어 고대 페르가뭄의 유물임이 판명되면서부터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이 발굴된 유물들을 실어 나르자 주민들은 왜 쓸모없는 저런 돌들을 애써 가져 가려 할까 할 정도로 유적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성서상의 버가모이며, 요한계시록 2: 12-17에 언급되어 있다.


 

v 아크로폴리스(Acro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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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약 300m 높이에 경사가 심한 산 꼭대기에 탑처럼 우뚝 솟아 있어서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필레타리우스 시대부터 지어진 성곽이 지진으로 무너진 채 남아 있다.

 

그리스 시대 이전에는 아크로폴리스 내에 있던 자체의 우물로 물이 해결되었으나 주민이 늘어나자 북쪽으로 44Km 떨어진 마드라(Madra) 산의 우물에서 이곳까지 물을 끌어드렸다.

 

이 수로에 사용된 수로관은 진흙으로 구워진 토관으로서 길이 50-75cm, 지름 16-19cm 의 토관 20만개가 사용 되었다고 하며 초당 45리터의 물을 쏟아 붓게 했다고 한다. 이 배수지에서 다시 이보다 작은 아연관을 통해 아크로폴리스의 각 지역에 공급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계곡에 당시에 물을 끓어 드리기 위해 사용했던 수로의 일부가 보인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네신전, 트라야누스신전, 제우스신전, 도서관등이 있는데 고대에 지어진 다른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이중 벽으로 되어있어서 습기나 벌레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이 방에는 약 20만 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집트로부터 파피루스를 수입하여 썼는데 경쟁관계에 의해 사이가 나빠지자 페르가뭄 사람들은 양피지를 고안해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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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parchment(양피지)"라는 단어의 어원도 "pergamon" 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v 세라피스 신전(Serapis) - 버가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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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신은 원래 이집트 신이기 때문에 "이집트신전"이라 불리기도하며 신전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The Red Hall)"이라고도 한다. 나중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요한 계시록의 버가모 교회에 바쳐지기 위해 바닥을 높여 교회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붉은 교회(The Red Basilica)" 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신전의 가장 중요 부분은 삼면이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이색적인 것은 이 기둥이 당시에 흔했던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아니라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기둥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이 조각 중 하나는 남성의 모습 하나는 여성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신인 이시스와 세라피스 신으로 추측된다.

 

또 한가지 특징은 강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즉 이 신전 밑에는 대각선으로 셀리누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직경 9m의 토관 2개를 묻어 강물이 흐를 수 있도록 했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평평하게 했다. 바닥 밑의 이 거대한 토관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v 아스클레피온(Asklepi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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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요법과 정신요법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병원은 최초로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졌다고 하나 오늘날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은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의 시대의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 기관이었다.

 

166년경 전염병이 이 페르가뭄을 휩쓸었을 때 제우스 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한 비문에는 "오, 위대한 제우스 신이여, 아스클레피우스(건강의 신)를 섬기는 우리 도시를 파괴하는 이 재난을 쫓아 주옵소서"라고 써있었다.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많은 비문들은 당시의 치료법을 자세히 적고 있다.

 

하드리안 황제시대 만들어진 양쪽에 기둥이 늘어선 화려한 대리석 도로가 있는데 이 길은 소위 "성스러운 길"이라 불렀다.

 

환자들은 아스클레피온에 들어오면 우선 맨발로 성스러운 길의 대리석 바닥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이 과정이 벌써 치료의 시작이다. 죽음의 신인 하데스로부터 멀어지고 건강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신에게 가까이 간다는 믿음 때문에 안도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정원 한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샘물로 목욕을 한다. 지금도 흐르고 있는 이 물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방사능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다. 목욕이 끝나면 환자는 지하 터널을 통해 치료실로 들어 가는데 80m 길이의 이 지하 터널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우며, 샘물에서 물이 지하 터널의 입구 계단을 따라 흘러 들어 오면서 작은 소리를 냄으로써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게다가 천정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이 작은 소리로 환자들에게 속삭인다. 즉, 환자들에게 생의 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또 의사들은 환자들의 꿈을 해몽해 주기까지 하는데 이 경우도 역시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말한다.

 

사티로스나 갈레누스와 같이 유명한 의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ypocrates)도 이곳에서 출생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