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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 연안 지역

제목 보드룸 (BODRUM) - 고대도시 할리카나소스(Halicarnasus)
작성자 윤여행사
작성일 17-03-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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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룸(BODRUM)은 현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에게 해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이다. 이 도시는 BC 1000년경에 도리아인에 의해 세워진 고대도시 할리카나소스 (Halicarnasus)이다. 페르시아가 지중해와 에게 연안을 휩쓸어 리디아(Lydia)왕국을 점령하고 BC 480년에는 페르시아 이름으로 카리아 왕국이라 불리었다.

 

마우솔로스왕은 이 카리아지역(소아시아-아나톨리아 남서부) 통치하는 헤카톰노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BC 377-353제위) 아버지인 헤카톰노스는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 세력에 대항하는 이오니아 세력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마우솔로스는 기원전 377년에 왕이 되자 아버지와 정 반대의 결정을 내린다. 강력한 페르시아에 대항하다가는 왕국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생각에서 페르시아로부터 자치권을 얻는 조건으로 태수직을 부여 받고 이오니아 세력과 결별한다.

 

이 때 마우솔로스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토인 할리카나소스를 요새화하여 적들로부터 보호하기로 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4개의 문이 있는 5.5Km에 달하는 정교한 방어벽을 만들고, 프로코네시아 지방의 대리석으로 성벽을 감싸고 근처의 도시에 있는 주민들을 이주 시켰다. 이 하리카나소스가 항구와 면해있는데다가 남쪽은 방어에 유리한 절벽으로 되어있었다. 훗날 알렉산더가 그 강력한 군대로 전격적인 기습작전을 펴 공격하였으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알렉산더는 성 중앙에 우뚝 솟은 기념비적인 무덤을 매일 보면서 장병들을 격려하여 드디어 기원전 334년에 하리카나소스를 함락한다. 알렉산더가 완성된 지 채 20년이 되지 않은 마우솔로스의 무덤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마우솔로스는 생전에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가로32m, 세로 38m, 높이 50m 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제외하고는 당시로서는 가장 규모가 컸다. 특히 건축 감각이 뛰어난 마우솔로스왕이 이 무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으로 인해 그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무덤이 완공되기도 전에 마우솔로스는 죽었고 그 뒤를 그의 누이동생이자 부인인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실제로 완성된 것은 그녀가 사망한 후인 350년경이다. 이 여왕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슬퍼하여 왕을 화장한 뼛가루를 포도주에 섞어 죽을 때까지 마셨다. 이 이야기는 그 후 중세 시대에 부부간의 사랑의 미덕으로 여겨졌고 수많은 자수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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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이 왜 7대 불가사의로 불리어 졌을까?


이 무덤은 브리악시스, 티모테오스, 레오카레스 그리고 신전을 건설하고 신을 조각하는 조각가로 당대에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피테오스가 합작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웅장한 무덤의 규모에 어떻게 거대한 조각상과 돌들을 올렸을까? 그리고 피테오스가 조각한 4두마차를 어떻게 무덤 정상까지 올려 장식했을까? 밑바닥의 토대를 형성한 이오니아식 기둥 36개가 3m 간격으로 서있는데 이 기둥 안에 설치되어 있는 놀라운 조각상들...... 이러한 것들이 정말 현대인으로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무덤의 영향으로 거대한 장례 건축물을 마우솔레움(Mausoleum)이라 부르는데 이 무덤은 어떻게 해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을까?

 

사실 15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마우솔레움은 어느 정도 형태를 보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우솔레움의 수난은 할리카나소스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간 지역에 위치하여 십자군이 근거지로 삼았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십자군은 오스만 투르크가 언제 공격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커다란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커다란 돌과 모르타르가 필요했다. 벽돌과 돌을 접착시키기 위해서 석회석을 용광로에 가열하여 석회를 얻은 후 모래, 물을 섞는 것이다. 마우솔레움의 비극은 바로 재료의 공급 때문에 생겨난다. 십자군들이 요새를 보강하기위해 마우솔레움을 파괴하여 돌들을 사용하는 바람에 1522년에는 이 무덤은 완전히 사라지고 대지가 평평하게 되었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 사자상 하나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정상부의 4두 마차의 말 조각은 대영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보드룸은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계적인 대 역사학자 헤르도투스(BC 484-420)의 출생지이다.

 

** 그리스와 페르시아간의 서사시적 투쟁의 연대기 서술
** 로마의 신화적 탄생으로부터 3세기 중엽까지의 역사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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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볼거리


보드룸성(로도스의 기사 성 피터), 수중 박물관, 마우솔레움의 토대, 로마시대의 극장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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