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갈리볼루 (GALIBOL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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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여행사 |
작성일 | 17-03-13 18:24 |
그리스어로 트라키아 지방으로 불렸던 이 지역의 해협은 헤레스폰투스(현지명 다다넬스)이다. 갈리볼루는 이 해협에 있는 한 지명이다.
기원전 405년에 스파르타 장군 리산드로스가 아테네 장군 코논과 대 격전을 벌린 해협으로 당시 108척의 선박을 이끌고 달려온 아테네 해군을 4일 동안의 전투에서 거의 전멸시킨 곳이다. 그 후 크고 작은 많은 전투는 모두 이 다다넬스 해협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다.
근세기에 들어서서 제 1차 세계대전 시 1915년 3월부터 1916년 1월까지 11개월간 연합군과 터키(오스만제국) 동맹군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연합군이 이 해협을 통과하여 이스탄불로 쳐들어오기 위해 당시의 오스만 제국과 벌린 이 싸움은 일명 갈리볼루 전투 (차나칼레 전투라고도 함)로 터키 역사에 길이 남을 대격전이다.
당시의 연합군은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이며 동맹군은 독일, 오스만제국(터키)이다. 이 싸움의 목적은 오스만 제국을 독일로부터 이탈 시키고, 러시아를 지원하여 독일을 포위 공격하기 위한 해로 개척을 하고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 불가리아, 폴란드 등 발칸반도의 국가를 연합군으로 끌어 들이려는 의도였다. 전투는 1915년 3월 18일에 개시 되었는데 오스만 터키에 의해 설치 된 기뢰에 의해 연합군 군함 2척이 파괴되어 진격에 실패. 다시 4월에 영국제독 해밀톤(Hamilton)의 지휘아래 갈리볼루에 상륙작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터키 측의 제 19 사단장 Mustaf Kemal 중령(훗날 터키 초대 대통령)의 지휘로 연합군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시 8월부터 벌어진 재 전투는 오스만 터키군의 임전무퇴의 용감한 전투로 인해 결국은 연합군은 다다넬스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였다. 이 결과로 인해 사상자 현황은 오스만 터키군 213,882명, 연합군 252,000명에 이르렀다고 발표되었다.
이 전쟁의 참상은 미국에서 영화화되어 [갈리폴리전투]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다. 이 당시에 죽은 오스만 터키 군인들은 모두 Mehmetcik(메헤멧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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