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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지역

제목 15. 피에르 롯티 찻집 (PIERRE LOTI)
작성자 윤여행사
작성일 17-03-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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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에이웁(Eyup)지역의 골든혼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 무덤 주변에 있는 "피에르 롯티"라는 커피집은 이스탄불의 명물로 아직도 옛 방식대로 숯불 위에서 커피를 끓여낸다.

 

터키 커피의 진수를 맛보려면 이 찻집으로 가라 할 정도로 유명한데 왜 "피에르 롯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영토 안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과 무슬림들 사이에 불안이 싹트고 있었다.

 

한 불가리아 처녀가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위해 이슬람 성직자의 사무실로 가려고 하는 것을 미국영사가 막으며 영사관으로 데려간 사건이 있었고, 이에 이슬람신자들은 격분하여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영사관에서 그 처녀를 빼오자고 결의하였다불란서와 독일 영사들이 무력은 포기하라고 설득 차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성난 이슬람 신자들에게 살해 당하게 된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가 이를 보복하기 위해 유럽의 국가들이 합세하여 서명하고 국제적인 함대를 파견하게 된다. 


1876년 프랑스의 해군장교 "Julien Viaud (일명 피에르 롯티)"가 콘스탄티노플의 프랑스 순찰함대 GLADIATEUR"

발령을 받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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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해군장교였던 "피에르 롯티"는 위험 지구라고 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이슬람 지역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지역을 산책하는 동안 한 젊은 여인이 하렘의 울타리 뒤에서 그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고, 이 여인과 그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아지야데(Aziyade)"였다.

 

그의 눈이 아지야데의 초록색 눈과 마주쳤을 때 번갯불이 내려치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피에르 롯티는 혼란 속에서 터키의 한 유부녀인 아지야데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늙은 사업가 Abeddin 4명의 부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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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그녀의 하인들과 피에르 롯티의 동료들 덕분으로 그녀를 비밀히 만나면서 점점 그 천진난만한 사랑의 푸른 꽃이 그의 가슴에서 피어 오르고 이 사랑이 격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염문관계는 부부이거나 혼인관계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하였다.        

아주 가벼운 간통 의심만 가지고도 그 지역의 주민들이 그 남녀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혐의자의 문을 두드릴 정도였다. 

때문에 롯티와 아지야데의 이 비밀관계는 위험이 대단히 컸다.

 

롯티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이프러스 나무와 수백 년 된 무덤들로 둘러싸인 성스러운 모스크 에윱(Eyup)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고 초라한 찻집에서 아지야데와 만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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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프랑스 장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터키 문화 속에 융합되었고, 터키에서 동양의 생활에 매혹되어 이슬람교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터키인들의 생활 방식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터키모자를 쓰고 터키식 소매긴 옷(Caftan)을 입고 터키어를 배우며, 그는 천천히 아무 의심 없이 터키인이 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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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티는 터키이름 <아리후 에펜디>로 계속 불리기를 원했으나 군인의 신분으로 이별의 시간을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877 327일 로티는 이스탄불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터키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해군장교의 직을 버리고 터키 군에 합류하는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절대로 이를 허락 지 않았다.   

이 젊은 장교는 어머니를 위해 동양에서의 삶을 희생해야 했다.

 

롯티가 떠나자 아지야데는 곧 살해된다.(터키의 전통 살인으로 추정)

그의 기억 속에 새겨진 아지야데의 이미지는 그가 죽을 때까지 잊을수가 없었다.

훗날 롯티는 이 에윱의 무덤가에 있는 찻집을 다시 찾아 왔고, 톱카프 근처의 공동묘지에서 아지야데의 무덤을 발견한다.

 

그 후 롯티는 터키에 머물며 그 찻집에서 아지야데와의 사랑을 소설로 엮어내며,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두 사람의 밀회 장소를 찾는 이들이 터키전통 커피를 맛보며 이 곳의 찻집도 명물이 되었다.


현재는 케이블카를 타고 주변의 무덤들을 내려다 보며 찻집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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