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트라키야:에드리네] 터키 기름 레슬링 (야으르 규레쉬-Yagli Gu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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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여행사 |
작성일 | 17-04-14 17:58 |
레슬링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고대에 출토된 유물이나 유적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멀게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부터 레슬링과 유사한 모습의 벽화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지금의 레슬링이 알려진 것은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통해서 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레슬링 종목 중 “그레코로만형”은 말 그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적인 레슬링 경기를 모방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터키식 레슬링을 소개하고자 한다.
터키식 레슬링은 지금으로부터 약 65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오스만 제국시대였던 1354년 6월 차나칼레에 주둔하고 있던 술레이만 파샤(장군)의 군인들 40명이 이스탄불에 있는 루멜리성으로 가는 길에 에드리네(Edrine : 현재 불가리아와 가까운 국경도시)에서 쉬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재미로 40명이 20명씩 두팀으로 나누어서 씨름을 시작하였고, 양팀의 19명은 어느 정도에서 씨름을 중단하였지만, 나머지 2명은 서로 “한 사람이 질 때까지 계속하겠다”라며 쉬지않고 승부를 겨루었다. 나중에는 동료들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고, 끝장을 보다 결국 두 사람은 지쳐서 죽고 말았다.
동료들은 그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묻고 루멜리성으로 가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그 자리에 다시 가보니 그 땅 위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를 40명의 터키병사를 뜻하는 크르크(KIRK-터키숫자 40) 프나르(PINAR-샘물)라 명명하고 해마다 6월이면 이 장소에서 씨름을 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이곳의 물을 몸에 바르고 씨름을 하였는데 나중에는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상대방 선수가 몸을 붙잡기 어렵게 하면서 경기를 하였고 경기가 끝나면 다 같이 하맘(터키탕)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이 씨름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있지만 끝을 알리는 신호는 없기 때문에 한 선수가 질 때까지 이틀이라도 계속하였다. 최후에 이긴 선수의 바지는 메카의 SAM(샴)문에 걸어 놓기 위해 누군가가 메카로 가져가는데 이 문에 걸리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고, 바지의 주인공은 다시는 이 경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FILLIZ NURALLAH” 라는 사람은 경기에서 이겨 그의 바지가 메카의 샴문에 걸렸는데도 경기를 계속하여 지탄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술탄 무랏트 4세(1623년)와 술탄 압둘 아지즈(1861년)는 이 경기를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6월말에서 7월초사이에 에드리네(Edrine)지역에서 전통방식으로 진행하는 이 터키씨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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